‘진화→조림’의 반복, 피해자 없는 복구 가능한가
생태·생계·공동체까지 아우르는 종합 대응 시급

“산림청 임도 확충 계획, 재난 부추길 수 있어” 지적
국제사회는 회복 중심 재난 대응으로 전환 중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선 사회적 재난의 양상을 띄며 기존의 진화 중심 대응 체계를 넘어, 생태·사회적 회복 중심 정책 전환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선 사회적 재난의 양상을 띄며 기존의 진화 중심 대응 체계를 넘어, 생태·사회적 회복 중심 정책 전환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한국의 산불 대응 정책이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 3월 발생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선 사회적 재난의 양상을 띠며, 장기화된 생계 타격과 공동체 붕괴라는 복합 피해를 낳았다.

이 가운데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를 포함한 국내외 환경·시민단체, 학계, 국회가 함께한 제41회 우이령포럼 ‘산불과 산촌: 산림정책 전환과 피해주민 일상회복’(5월22일 개최)은 기존의 진화 중심 대응 체계를 넘어, 생태·사회적 회복 중심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진화만으론 부족··· 예방과 복원까지 아우르는 전략 필요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후 변화로 인해 대형 산불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존의 진화 중심 대응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산림 내 연료물질의 밀도를 조절하고, 내화 수림대(Firebreak Forest)를 과학적으로 조성하는 등 선제적인 ‘예방형 산림관리’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혼합림 생태계가 산불 확산을 자연적으로 억제하는 중요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며, 산불 이후 빠르게 단일 수종으로 조림하는 방식이 아닌 ‘생물다양성 중심의 생태적 복원’을 주문했다.

산림청 “임도 확충” 발언··· 시민단체 “생태계 파괴” 경고

산림청이 보호지역 내 임도 개발 계획을 공식화한 가운데, 시민사회는 해당 정책이 생태계를 파편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산불 저항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외 사례에서도 산림도로가 산불 확산의 경로로 작용하거나, 삼림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등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2020년 미국 오리건주 산불에서는 임도 확장 구간을 따라 산불이 빠르게 확산된 사례가 있었고, 이후 해당 주정부는 일정 구간의 임도 폐쇄 조치를 취했다.

올해 경남 산청군 시천면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사진제공=산림청올해 경남 산청군 시천면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사진제공=산림청

“벌채는 복구가 아니다”··· 추경 예산 활용 방식 논란

남준기 ‘산과자연의친구’ 부회장은 정부의 산불 추경 예산 약 3조 원이 대부분 장비와 조림에 편중되어 있으며, 정작 피해 주민의 생계 안정과 주거 회복을 위한 항목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남 부회장은 “UN 사회권규약 제2조 1항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가용 가능한 최대 자원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며, 벌채와 조림 대신 주거 재건, 생계 복구 등 주민 맞춤형 지원에 예산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지역 산림조합이 산불 피해지를 대규모 벌채한 뒤 해당 목재를 ‘미이용 바이오매스’로 포장해 석탄 발전소에 판매하는 행태는 ‘복구의 상업화’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민 피해는 ‘재난의 시작점’··· 장기 복원 대책 절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산불 진화 이후 본격화된다. 작가 신하림은 현장을 다녀온 소회를 통해 “주민들은 생계를 잃고, 공동체 내부의 신뢰가 무너지는 등 장기적인 심리적·경제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대 주윤정 교수는 “대부분 산불 피해 지역은 지방 소멸 위기 지역으로, 고령 인구가 많아 주거 복구와 사회적 재건이 더욱 어렵다”며, ‘공급자 중심 주택 복구’가 아닌, 주민의 참여를 전제로 한 민관 협력형 주거 전략을 제안했다.

해외 사례: ‘회복 중심 산불 정책’이 대세

국외에선 이미 재난 이후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이 도입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1년부터 산불 피해 지역 주민에게 긴급 임시 주거 제공, 생계 재건 보조금, 정신 건강 치료 서비스, 자녀 돌봄 지원 등을 포함한 ‘포괄적 복구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호주는 2020년 대형 산불 이후 ‘재해 복원청(Agency for Disaster Recovery)’을 신설해, 단기 지원을 넘어선 장기 복구·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했다. 이 기관은 비영리단체, 원주민 공동체, 지방정부와 함께 맞춤형 회복 프로그램을 수립한다.

스페인 역시 최근 산불 피해지역에 ‘공동체 기반 탄소 중립 회복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지역의 전통 농업과 문화자산을 연계한 지속가능한 지역경제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특별법 제정 요구, 국회 논의 시급

장영주 국회입법조사처 팀장은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산불과 같은 복합 재난의 생계·공동체 회복까지 포괄하지 못한다”며, 이를 보완할 산불 피해 지역 회복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승규 녹색당 안동시 공동위원장은 “산불 대응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정책”이라며, 초당적 협력과 수요자 중심의 회복체계 구축을 주문했다.

박은식 산림청 국장도 “산림 관리뿐 아니라 지역경제와 주민 생계까지 포함한 종합적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며, 시민사회와 협력해 대응 체계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동시 산불 피해 지역 /사진제공=산림청안동시 산불 피해 지역 /사진제공=산림청

이제는 '산불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

산불은 단지 나무를 태우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삶을 지우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파괴적 사회재난이다. 이제는 진화와 조림을 넘어, 삶의 회복과 공동체의 복원을 포함한 종합적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 사회가 산불을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법과 정책의 근본 전환에 나설 시점이다.